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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용사의 비틀린 영웅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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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내가 말한 물품들을 준비하러간 사이, 나와 두명은 응접실로 초대받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마차에 대한건 스스로 경비를 벌겠다는 이야기였다고 둘러대어놓았다. 국왕은 내 말에 감동받았는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당장 준비해오겠다고 달려나갔지만. 쩝. 역시 거짓말은 찝찝하네.

 

어쨌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기로한 우리 용사 세명은 우선 소환된 일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예상대로였지만, 두 사람 모두 나처럼 게임 캐릭터가 사라지고 새로 생성하자 이 곳에 소환되어있었다고 한다. 물론 내가 했던 게임과는 전부 다른 타이틀의 것들이었지만.

 

검사를 고른 소년. 강윤성. 19세. 고3. 주제에 명문대를 노리던 톱클래스의 괴물 고딩이었다고 한다. 

 

마법사를 고른 여대생. 서율. 21세. 대학교 2년생. 남자친구에게 차인 후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 청명. 23세.

 

 

무직.

 

솔로.

 

고졸.

 

 

내 소개를 들은 두명의 표정이 순식간에 동정으로 가득찬다.

아니. 필요없으니까. 너희들의 값싼 동정따윈 공짜로도 받지않으니까.

 

....젠장....역시 잘못됐어....직업이라도 멀쩡한걸 고를걸...괜히 변태같이 버퍼같은걸 고르고...젠장...

 

 

"뭔가 달라진건 없어? 외모라던가."

 

"있어요. 저는 이 곳에 오기 직전에 갈색으로 염색했었어요. 머리도 이것보단 더 길었고. 눈동자도 제대로 검은색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서율의 보랏빛 눈동자가 살짝 빛난다.

그렇구나. 나도 이곳에 오기전엔 상당히 아저씨같은 외모였으니까. 며칠동안 수염도 안깎았었고.

 

요컨대, 게임에서 생성한 캐릭터대로 외모가 만들어졌다는건가.

 

 

"그런데 우리 모두 흑발을 선택한건가요...의외로 취향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웃기는 소리하지마. 흑발이 가장 무난했다고. 게다가 난 외모같은건 잘 안따지는 편이니까."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게임은 룩빨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형."

 

"누가 네 형이냐."

 

 

붉은 눈동자의 소년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형이 부르기 편하다고 살갑게 웃었다.

 

쳇. 마음대로 부르시던가. 

 

뭐 어쨌든. 이미 이세계로 전이해버린 단계에서 외모가 바뀌었느니 신장이 차이가 나게 되었느니 전부 쓸데없는 정보가 되어버렸다.

 

 

"...."

 

"...."

 

 

뭔데.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건데.

 

두명은 차림에 맞지않게 다소곳한, 무릎을 모아놓은 포즈로 이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건가? 혹시 전이하는 과정에서 이상한거라도 씌여버린걸까.

 

아니. 그건 아니지. 상식적으로.

 

 

"....둘다 왜 그렇게 보는건데."

 

"....아니. 그게..."

 

"저...."

 

 

우물쭈물 답답하네. 똑바로 얘기해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혀를 쯧하고 찬 나는 응접실의 구석에 있는 거울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향했다.

이상한거 붙어있었는데 안 말해준거면 화낼거다. 난 그런거 되게 신경쓰는 사람이거든.

 

동그란 모양에 고풍스러운 장식이 되어있는 거울은 딱봐도 비싸보였다. 여기서 나갈때 하나만 챙길까. 그 왜. 엄마들도 호텔에서 나갈때는 샴푸나 수건같은걸 챙기잖아? 음. 레벨이 다른 수준의 챙기기이려나. 뭐 어때. 이렇게 호화로운 왕궁인데 이것 하나 챙겨간다고 누가 신경 쓰겠냐.

 

어라?

 

 

"...뭔데 이건."

 

 

그렇다. 보자마자 깨닫고 말았다.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역시나 내 원래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냥 다른게 아니라 차원 수준으로 달랐다.

 

거울 안쪽에는,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수준의 미소년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취하면 엄청나게 추할 광경인데도, 거울이라는 액자가 있으니까 무슨 예술 작품으로 보인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할말도 제대로 안나오는데.

 

 

 

"아. 모여계셨군요. 서로 이야기는 충분히 나누셨는지."

 

 

분위기 파악을 못한 국왕은 중년치곤 치렁치렁한 금발을 나부끼며 응접실에 얼굴을 내밀고는 내가 부탁한 물건들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준비되면 뭐해. 내 쪽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마음의 준비따윈 물건너간지 오래라고.

 

어쨌든. 그와 함께 10명 정도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전부 각자 이 나라의 요직을 맡고 있는 장관직의 신하들이라고 한다.

 

제복이라니. 뭔가 기분 나쁘지만, 취향이라고 생각해주기로 했다.

 

 

"그럼, 질문 시간입니다. 뭐든지 여쭤보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답할수 있는 곳까지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리지요."

 

"흐음. 그렇다면..."

 

 

손을 살짝 든 윤성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나라에 닥쳤다는 재난부터일까요. 우리를 소환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사실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으니까요. 제대로 설명해주세요."

 

 

좋은 질문이다. 나도 생각하던참이었으니까. 명문대는 모르겠지만 바보는 아닌듯하군.

 

흐음흐음 거리며 납득하는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 묘한 시선이 느껴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데. 너희들 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건데.

 

 

"....크흠. 그렇군요. 그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될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요. 이 곳에 소환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없을리가요."

 

"하하. 그도 그렇군요."

 

 

싱긋 웃은 국왕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팝콘이라도 준비해야하려나?

 

 

 

 

"벌써 15년전의 이야기입니다. 주변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소국인 저희 코타니아는 강대국인 보라타니아, 미튼헬름 사이에 끼어있으면서도 발전된 마공학 기술 덕분에 큰 위협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공학?....아. 죄송."

 

 

생소한 단어라서 생각이 튀어나와버렸다. 쯧. 이 버릇은 고쳐야겠는데.

 

어라.

 

 

"저기....왜 다들 날 보고 있는건데? 정말 신경쓰이는 중이니까 누구던지 빨리 털어놔라."

 

"...마공학이란 것은 기계와 마법을 결합시켜 더욱 뛰어난 수준의 기술력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서 저희 나라쪽에서 처음 개념을 제창하여 이리 부르고 있는 기술입니다. 매년 전문 인력을 양성할 정도로 중요한 학문이지요."

 

"무시냐!"

 

 

꼭 알아내고 말겠어. 대체 뭐가 잘못되서 내 얼굴을 계속 보는건데.

 

 

"계속해서, 15년전. 저희 나라의 마공학자들은 더 이상 연구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높은 명성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자랑거리로 내세울 무언가가 필요했던거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연구 성과를 총집시켜 하나의 완벽한 생명력 연산 기계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생명력...연산기계?"

 

"그것의 이름은 - <핵석>. 코타니아의 기술력에 다시금 감탄한 보라타니아 등은 처음엔 찬사를 보냈으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핵석의 말도 안되는 응용 방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죠."

 

"....인공 생명."

 

 

국왕은 내 입에서 나온 단어에 놀란 눈치를 보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님의 혜안에는 감탄할 따름이군요. 그렇습니다. 핵석은 말그대로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생명 기계, 즉-우리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아버렸던겁니다. 그래서 일지도 모르죠. 신벌을 받아버린걸지도."

 

"신벌이라함은 무슨 말씀이시죠?"

 

"말그대로입니다. 서율님. 당연하지만, 핵석으로 만들어진 인공 생명은 생명을 가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깨달아버린겁니다. '자아'를."

 

 

그렇군. 흔한 과학기술의 아포칼립스라는건가.

 

그런 쪽의 판타지라면, 몇개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쓸데없이 설정이 치밀하다는 느낌이 드는건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메스꺼워. 왠지....

 

 

"무작위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더 이상 실험실 안의 실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마물]. 우리는 그것들을 그렇게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우리의 임무라는 것은, 그 [마물] 이란 것을 전부 퇴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성님. 그 문제라면 - 이미 해결되었으니까요."

 

 

약간 앞서나간듯한 윤성의 말을 부정하며, 국왕은 손사래를 쳤다.

 

해결되었다고? 고작 15년만에?

 

 

"자아를 가지게된 마물들은 스스로 두가지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공존하느냐. 또는 배척하느냐. 후자는 꽤나 큰 세력을 이룬 것을 가까스로 몰아내어 숲에 가둬버렸기에, 지금에 와서는 큰 위협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가 조용히 바로 옆의 제복 남자에게 눈짓을 보내자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잠시 응접실을 나가더니 어떤 상자 같은 것을 품에 소중히 안은채로 돌아왔다.

 

담황색-아마, 호박이라는 광물로 만들어진 것 같다-의 상자는 화려한 두마리 용이 감싸는 장식의 뚜껑과 쌍두독수리가 그려진 문양의 하단 부분이 정교하게 맞물려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뚜껑의 정중앙에는 어떤 패널 같은 것이 있었는데, 국왕이 손을 가져다대자 가볍게 툭 하고 열렸다.

 

 

가볍게 이쪽으로 기울어진 상자안의 물건에, 우리는 자신들도 모르게 숨을 삼켜버렸다.

 

 

"....아름다워...."

 

 

서율이 무심코 중얼거릴만큼, 아름답게 붉은색으로 빛나는 정팔각형의 광석.

 

그것의 내부에서는 무슨 작용인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다홍색의 연기 같은 것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이건. 핵석이란건가요?"

 

".......! 그렇습니다. 어찌 알아보신...겁니까?"

 

"이 상황에서 보여준다면 아마 그쪽이 가장 설득력 있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놀란 표정으로 이쪽 보지말라고. 반편 용사들. 너희들이 더럽게 눈치가 없는거니까.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씀입니다. 이것은-우리 마공학자들이 만든 핵석이 아닙니다."

 

"무슨-?"

 

"이것은 우리 왕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보물, [화마룡 티타니아] 의 심장석. 용의 핵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네. 핵석입니다."

 

"하...하지만 핵석은 15년전에 당신네 마공학자가 처음 만들었다고-."

 

" '처음' 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런 단어는, 한마디도."

 

"...."

 

"저희도 이것을 누가 만든건지는 모릅니다. 조물주일지도, 혹은 설마지만, 인간일지도 모르죠. 중요한 것은 그쪽이 아닙니다. 고대의 신수들에게서 핵석이 나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은 즉슨, 이 나라에 닥친 재앙이란건 핵석 그 자체였다는 말이군. 마공학을 처음으로 제창하고 매년 전문 인력을 양성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기술을 가진 나라라면, 고대의 핵석을 가지고 그것과 똑같은 수준의 핵석을 만들어내거나, 신수를 재현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정확하십니다."

 

 

젠장. 너무 복잡하잖아. 대충 머릿속으로 정리는 되었다. 평생 잔머리만 굴리고 살았으니까. 어떤식으로 해나가야할지 맵도 대충 짤 수 있었다.

 

중요한 요점은 이번에도 네가지.

 

첫째. 게임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이 세계에 적용되고 있는 것인가. 아까부터 신경쓰고 있었던거지만, 시야의 가장 구석에 보이는 이 아이콘. 아무리봐도 그거다. 스테이터스 아이콘이다. 밀레니엄 판타지 사가의 그것이랑 똑같다.

 

둘째. 핵석의 용도. 다른건 전부 말해줬지만 핵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역시 이 국왕은 수상하다고 느끼지만.

 

셋째. 겨우 15년만에 [마물] 에 대한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넷째. 버퍼라는 직업의 의미. 말할 것도 없다.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곳에 있어선 의미가 없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메인 퀘스트는 질색이지만 앞으로의 이세계 라이프를 위해선, 어쩔수 없이 협력해야한다.

 

그리고....내키진 않지만. 저 두녀석은 돌아가고 싶어하는 모양이니까.

 

....그런 마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녀석들에게는 내겐 없는 소중한 것들이 그 세계에 남아있을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솔플을 하겠다.

 

 

"그렇군요. 당신이 원하는건 두가지라고 봐도 되는겁니까? 핵석의 수집, 혹은 - 여차하면 파괴."

 

"그렇습니다. 저희 쪽에서는 웬만하면 수집이 마음에 가는 것이 사실이나...만약 타국이나 악인의 손에 넘어가면 그때는 끝이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행동하겠습니다."

 

"형?"

 

"오빠?"

 

 

누가 너네들 형이고 오빠냐.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싫은 역할을 좀 맡아줘야겠다. 뭐, 이쪽보단 편하겠지만 그래도 마음고생은 좀 해야될테니까.

 

그런걸 이겨내지 못하면 어차피 이 곳에서 살아남지도 못하겠지만.

 

"흐음.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왕궁을 나가시면 아무래도 저희들의 시야 밖이기에, 최소한의 혜택만 받게되실텐데요."

 

"어쩔수 없는 일이죠. 뭐. 하지만 왕성에 계속 머물기만하면 정보같은건 모이지 않으니까요. 혹시 모르죠. 손에 들어와줄지도."

 

"그렇습니까..."

 

 

뒤를 살짝 돌아보자 걱정이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보는 두 녀석이 '나도 데려가 달라' 라는 표정으로 안타깝게 서있었다.

 

 

"너희들은 남아있어. 우리들은 '용사' 로서 이 곳에 소환된 입장이야. 갑자기 전원이 왕궁에서 나가버리면 수상한 눈길이 따라올 수 밖에 없지."

 

"그렇지만-."

 

 

나는 말끝을 흐리는 서율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이별을 슬퍼하는척 귓속말로 속삭였다.

 

 

"-왕궁을 감시해. 무슨 일 있으면 메시지로 바로 연락하고."

 

"어...? 메시지라니...?"

 

"시야 밑의 아이콘 보이지? 나머지는 윤성이랑 알아서 잘해봐. 파이팅."

 

"오...오빠?! 잠깐만!"

 

 

나를 붙잡으려는 그녀의 손을 매정하게 피한 나는 마차로 안내해주겠다는 제복의 남자를 따라 응접실을 나가는 문으로 향했다.

 

그렇군. 잊어버릴뻔했다. 부탁할게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부탁할게 있어. 국왕님."

 

"무엇이신지...?"

 

"....내가 나가고 나면 소문 하나만 퍼트려주라. 국왕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나간 미친 용사가 있다고."

 

"구체적으로는....?"

 

 

 

 

 

 

"글쎄....'메인 퀘스트 같으니까 왠지 싫어. 장사라도 하겠어' 정도면 괜찮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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