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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용사의 비틀린 영웅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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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소환되는 것. 소설좀 읽거나 만화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상황이다.

보통 그렇게 소환된 주인공은 너나할것 없이 여자들이 스스로 꼬이고, 높은 명성을 얻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거나 그 곳에 남는다. 뭐, 요즘은 하도 그런게 정형화 되어서 참신한 발상들이 시도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글쎄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그 환상을 품어보았단건 사실이다. 부정하진 않겠다. 아니 솔직히. 이 좆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주겠다는데 마다할 멍청이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재벌 2세가 아닌 이상 이 현실에 답은 없잖아? 특히 이 나라는...아니. 그만두자. 

 

어쨌든. 중요한건 이미 일은 벌어졌다는 것이고, 나는 지금 어떤 소환진 안에 서있었다.

 

그, 약간 현실적이지 않은 기분이랄까. 손과 발끝이 저릿한건 소환의 반동이란 것이겠지. 대충 예상을 해본다.

 

젠장. 너무 전형적인 광경이라 솔직히 실망했다. 뭔가 더 참신했으면 좋았을텐데. 처음 시작부터 하늘에서 내리꽂힌다던가. 편의점에 들렸다가 나갈때 전이된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나말고 두명이 더 있었다.

 

한명은 흑발에 검을 들고 하얀 갑주를 입은 소년. 다른 한명은 역시 흑발에 스태프를 들고 보라색 로브를 두른 여성.

 

분위기를 보고 짐작컨대 나와 함께 소환된 동료. 라고 생각해도 괜찮으려나.

 

두 사람도 갑작스러운 일이였는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는 중인듯 했다. 쓸데없는 짓을 해주는구나. 어차피 보통 이런 상황에선 우리를 소환한 누군가가 그 이유따위를 설명해주러 올텐데 말이다. 즉, 에너지 낭비다.

 

 

"오오-. 당신들이로군요. 우리 나라를 재앙에서 구원해주실 용사님들-."

 

 

거봐. 그럴줄 알았다니까.

 

딱봐도 나 국왕이오-하고 말하는듯한 금빛왕관에 붉은색 치렁치렁한 로브, 화려한 장식의 옷을 걸친 중년의 남성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온다.

 

잠깐. 왜 난데. 저 쪽에 두명 더 있잖아? 게다가 내가 가장 초라해보이는 차림인데 굳이?

뭔가 능욕당하는 느낌이잖아....

 

하지만 국왕은 아무래도 괜찮다는듯이 연신 내 손을 부여잡고 흔들며 대소했다.

 

 

"이제는 안심입니다. 여러분이 오셨으니 한숨 돌릴수 있겠지요. 부디, 이 코타니아 왕국을 구원해주시길."

 

 

음? 코타니아?

 

잠깐만. 그 판타지 뭐시기 사가의 게임사 이름도 코타니아라고 하지 않았던가?

설마, 게임사의 몰래카메라라던가 그런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오...오! 물론이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어....음....화이팅-!"

 

 

두명의 텐션이 심상치않다.

뭔데 너희들. 당황하던거 아니였냐고.

 

힘차게 화이팅을 외친 보라색 로브의 여성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여성이랑 접촉할 일이 별로 없었던 나지만, 딱히 상관없지 않나 싶어 가볍게 손을 잡아 응대했다.

 

썩은 동정 녀석들처럼 호들갑 피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쪽은 경험자라고. 엣헴.

 

 

"저기. 우리 모두 이세계에 떨어져버린 것 같지만...꼭 돌아갈 수 있을거에요. 서로 힘내죠!"

"그...그래요! 분명 게임처럼 메인 퀘스트만 깬다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우와. 대단하십니다...아니. 정말로 이쯤되면 감탄이 나올법하다.

너네들 멘탈은 뭘로 만드신거죠? 아다만티움? 비브라늄? 지금 우리 이세계에 떨어진거 인식하고는 계신거죠?

 

....그러고보니 나도 할말은 없구나. 단지 내 쪽은 썩을정도로 침착하다는 것만이 차이점이긴 하지만.

 

검을 치켜들고 싱긋 웃는 녀석과 스태프를 만지작거리며 부들부들 떠는 녀석은 둘째치고, 몇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첫째. 게임 얘기가 나온걸 보니까 이 녀석들도 나처럼 게임에 연관된 일로 이곳에 떨어졌을 확률이 높다.

 

둘째. 방금 반응만 봐서도 알겠지만 이 녀석들이랑 행동하진 말자. 노답이다.

 

셋째. 두명의 차림과 무장에 대한 것인데.

 

아무래도 선택한 직업군이 발현해버린 것 같다.

 

검사, 마법사, 둘다 캐릭터 직업란에 있었던 것들이다.

 

그렇다면 내 쪽은 '버퍼' 라는 의미불명의 직업이 발현했다는게 되는데 말이지.

 

나는, 맨몸인채다.

 

 

.....젠장. 망했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제대로된 직업을 선택했겠지. 아니 생각해봐. 게임 캐릭터를 생성할때마다 이세계로 떨어질 확률을 계산해서 직업을 고르는 미친놈이 세상에 몇명이나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이래뵈도 멀쩡한 23세 청년이니까.

 

 

뭐, 그런고로 네번째인데.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원래 세계에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전혀, 단 1퍼센트도, 1도 없다.

 

 

미쳤어? 이 좋은 기회를 왜 스스로 날리겠냐. 국왕과 다이렉트로 일촌 먹었다고? 용사라고?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라고? 아직은 뭔지 모르겠지만 버퍼라는 능력도 있어. 금수저도 부럽지 않게 살수 있는 자리를 얻을 기회가 생긴거다.

 

방금 정했다. 이제부터 내 세계는 여기. 원래 세계따윈 없던걸로.

 

안녕. 지옥 대한민국.

 

안녕. 좆같이 방세 내놔라 닦달하던 주인 아줌마.

 

안녕. 내 하드에 고이 모셔놨던 2테라짜리 야동들. 특히 사쿠라 유아. 내 밤을 책임져줘서 고마웠어.

 

안녕. 캔커피.

 

 

 

어서오세요, 이세계 생활님. 어디로 모실까요?

 

엣헴. 자리라면 이미 예약해두었지.

 

 

"저기-. 국왕 전하."

"네. 용사님.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당장 대령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마차랑, 돈이랑, 무기 조금이랑...."

"....???? 네?"

"그리고 지도. 그건 꼭 필요하겠네요."

"어....용사님. 혹시나해서 여쭤보는건데....그건 왜...?"

"당연하잖아요."

 

 

 

나는 아마 회색으로 탁하게 빛나고 있을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돈 벌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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